[ 왼쪽에 작은 글씨로 주류제조업 허가증이 보이고 그림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전화 6번'이란 글씨가 파랗게 있다. ]
"영양 양조장은 살아있는 술 박물관이다."로 시작하여 막걸리 맛이 특이하다는 설명이 적힌 안내판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팔십여 년 전 그러니까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낡은 목조 건물이 현재까지 버티고 앉아서 모든 사연을 대변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딸네 집에 와서 크게 할 일도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볼일도 없어서 동네 구석구석 살피고 다니다보니 군청 청사 바로 옆에 술 냄새가 나고 낡은 양조장이 있었다. 그리고 이 양조장의 역사를 적은 커다란 간판을 보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봤다면 "저 친구, 어지간히도 할 일이 없군."하며 흉을 볼 지도 모를 일이지만 뒷짐을 지고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누룩을 띄우는 건물의 벽과 천장은 두 겹으로 했고 폭은 1m쯤 된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왕겨를 넣어서 보온이 되어 온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했단다. 주판이 놓인 낡은 책상, 국함(누룩 담는 상자), 거기다가 삐걱대는 대문까지 그때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당시 영양에는 전화가 모두 10대가 있었는데 양조장이 6번이었단다. 군청, 경찰서 같은 관공서가 5번까지를 쓰고 민간이 쓰는 것은 이 양조장이 맨 앞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양조장이 경제적으로 비중이 컸다나 뭐 그런 이야기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술맛이다.
이 영양 양조장만큼 옛 그대로의 막걸리 맛을 지니고 있는 곳이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영양 막걸리 맛을 표현한 그 다음 말이 정말 맛깔스럽다.
「누르스럼한 빛깔의 영양 막걸리는 단맛이 그리 세지 않고 톡 쏘는 탄산이 별로 없고 묽은 편이다. 첫입에 확 끌어당기는 '섹시함'은 없지만, 뙤약볕에서 일한 다음 벌컥벌컥 들이키며 갈증을 해소하기 알맞을, '농부의 막걸리'이다.」
그럼, 그렇지.
이런 시골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농부들을 위한 시원한 막걸리이면 되었지 뭘 또 바라겠는가?
속으로 수긍을 하면서 한참을 둘러보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일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안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군침만 삼키며 돌아왔다.
저녁에는 김치 한 사발 앞에 두고 막걸리나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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