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2011. 12. 07. 』

일흔너머 2011. 12. 8. 11:55

 

 

 

 

예보에 내일은 눈이 올 것이란다.
원래는 목요일인 내일 온천을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길이 험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하루 당겨 가기로 했다. 그런데 손녀가 낮잠을 오래 자는 바람에 오후 세시가 훨씬 넘어서 출발을 했다.


대략 삼십분 거리에 청송이 있고 주왕산관광호텔에 ‘솔기 온천’이 있다. 청송이라면 산골이란 개념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주왕산이 있고 달기 약수가 있어 한창 붐빌 때는 어지간한 도회지 못지 않다.


손녀는 차를 잘 타기 때문에 집사람과 나는 심심하면 차를 타고 놀기 좋은 곳으로 나다닌다. 온천도 그 하나다. 가는 도중에 집사람이 자꾸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걱정은 되지만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괜찮다고 진정시키고 호텔까지 잘 갔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상한 느낌이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발에 전해져왔다. 그럭저럭 도착해서 아무 일없이 목욕까지는 잘 마쳤다.


겨울은 해가 일찍 빠진다.

오후 다섯시만 넘으면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타고 시동을 거는데 결국 이상이 나타났다. 계기반에 없던 표시가 한꺼번에 서너 개의 불이 켜진다. 우선 어딜 이동은 해야할 것 같아 기어를 넣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얼른 다시 주차를 시키고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했다.


제일 문제가 어린 손녀였다.

주위는 어두운데 겨울의 찬바람은 불고 도시처럼 다른 교통수단도 없고 자칫 이 호텔에서 하루를 묵어야할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집사람과 손녀를 호텔 로비에 가 있으라고 하고 보험회사 [긴급출동서비스]를 불렀다.


정말이지 이렇게 반가운 목소리가 또 어디 있을까. 지금 무슨 보험회사 선전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 상황에서는 그랬다. 상냥한 아가씨가 차량번호를 묻더니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는가를 물어왔다. 지금 내 상황이 이러이러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를 역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우선 가까운 정비소로 견인을 해 드리겠다고 하면서 기다리란다. 정말 몇 초가 지나 문자메시지가 왔다. 접수가 되어 연락해 두었으니 금방 견인차가 갈 거란다. 그리고 일분 정도 지나자 전화가 왔다. 장소를 묻고 십분 이내에 갈 것이란다. 어린 아이가 있으니 되도록 빨리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견인차를 몰고 온 젊은이는 아주 친절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전화로 정비소에 물어보더니 함께 차를 견인하여 ‘청송 카 서비스’란 간판이 높다랗게 달린 정비소 마당에 내 차를 세워놓았다. 미리 연락을 받은 정비소 사장님은 밖에서 우리를 마중하고 핸들까지 무거워진 차를 끌어가더니 고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때가 저녁 일곱시,

아마 도시의 정비소면 오늘은 안 된다고 했을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사장님은 벨트가 타서 끊어진 곳을 가리키며 타이어를 풀어 내려놓고 에어컨의 ‘아이들 베어링’이 문제라 했다. 시골 정비소라 준비된 부품은 없고 ‘안동’에 연락해서 정기 노선 버스가 ‘진보’까지 가져오면 사장님이 직접 가서 가져와 정비를 해 주겠단다.

 

그리고 부품 가격과 정비 수가를 알려주었다.

다른 말은 이미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친절한 사장님이 오늘 중으로 해 준다는 말이 고마웠다.


기다리는 사이, 둘째가 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 집사람과 손녀는 추운데 기다리느니 먼저 ‘영양’집으로 가라고 보냈다. 혼자 정비소에서 기다리는데 여덟시 오분에 부품이 ‘진보’에 도착한다고 사장님은 차를 타고 나갔다. 그리고 이십 여분이 지나자 바로 부품을 가지고 와서는 채 삼십분도 안 되어 이미 풀어서 준비한 차에다 차근차근 끼어 넣고 말짱하게 고쳐주었다. 사장님의 정비 기술은 이런 시골에 있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가지고 있는 현금도 없어서 구좌번호를 적은 명함을 받아 들고나오며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밤 열시가 넘었는데도 바로 인터넷으로 입금을 시키고 전화를 내어 고맙다고 또 주위에서 도와준 젊은 분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해 주라고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시골에서 일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갑자기 난감한 일에 봉착하여 크게 당황한 하루였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려고 하는데 집사람이 하는 말,
“우리나라는 역시 배달민족이다. 그지요?”
“그래요, 우리나라는 역시 빨리빨리 배달되고 해결되지. 이래 살다 중국 같은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면 참 답답해…….”
그 배달이 이 배달인지 묻지도 않고 모든 것이 해결된 시원한 마음에 한참 웃었다.

아름다운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