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그래도, 잘 살았다 』

일흔너머 2010. 7. 9. 12:15

 

          [ 마지막으로 바다를 한번쯤 바라보고 갔으면 좋으련만 너무 큰 걱정이 앞에 있어 그런지 다들 행동이 불안하다..! ]

 

눈만 뜨면 파란 바다가 꿈처럼 넘실거린다.
머리맡에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동해 바람이 시원하게 살랑거린다. 거기다가 굳이 할 일도 없다. 갈매기 울음에 종일 파도소리나 듣고 낮잠을 즐기면 된다. 녀석은 동글동글 자갈밭, 햇빛 한가한 모래톱 앞에 집을 두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언제부터 저렇게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먼저 와 자리를 잡았으니 선배다.


태풍이나 파도가 너무 심할 때를 대비하여 방파제가 있고 그 뒤로 자동차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도로,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여진 널빤지로 만들어진 피난민 가옥 같은 집, 바로 녀석이 사는 주거지다.


아파트 이층에서 가만히 지켜보면 종일 드러누워 자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싱겁게 건드리듯 한번 짖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겠다는 듯 일어나지만 한계가 있다. 그저 두어 걸음 다가서면 끝이다. 더 이상 나가지 못하게  줄을 매어두었기 때문이다. 목이 걸리는가 싶으면 일없었다는 듯 자신의 그 변변찮은 집을 한바퀴 빙 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고개를 들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길게 하품 한번 짓는 것이 이 녀석의 습관이다. 나는 아직 녀석의 정확한 이름도 모른다.


처음 이 녀석을 만난 것은 감포(甘浦)항에서 약간 떨어진 해변이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 해변 가까이 지어진 아파트 하나를 구하고 아내와 함께 이삿짐을 나를 때였다. 초면에 녀석은 심하게 짖었다. 못 얻어먹어 비쩍 마른 체구에 아주 신경질적이었다.


햇빛이 따가운 더운 날이었는데 가까이 뒹구는 밥그릇에는 마실 물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되면 되고 안 되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천대받는 신세 같았다. 차라리 묶여있지 않았다면 돌아다니며 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것이다.

 
하지만 끈은 단단했다.
단단하거나 느슨하거나 주인이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누가 밥을 주는가. 누가 물을 주는가. 지켜봤지만 밝은 낮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내는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녀석에게 들이밀었다. 나는 물도 넉넉히 주라고 일렀다. 연거푸, 아니 몇 번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 아내에게 푹 빠졌다. 근처만 지나가면 꼬리를 흔들고 다리를 휘감으며 난리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붙이기 나름이라 했다. 정이 그리운 나머지 누구에게나 기대는 것을 보면 녀석이 정말 안타깝다. 눈만 뜨면 바다만 보이는 곳에서 정말 고독한 나날을 보낸 것이다. 나는 조용한 바다가 좋아서 왔지만 녀석은 아무도 없는 이곳이 그렇게 쓸쓸했던 것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날은 점점 더워온다.
이 삼복을 어떻게 보낼까.
"개∼ 에 삽니다."
하며 오늘 오전에 화물차 뒤칸에 쇠창살로 만든 우리를 싣고 지나갔다. 아파트 뒷집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작은 복슬개를 오만 원에 팔아버렸다.


"저렇게 작은 개도 사 가네요. 다른 데서 키우려는 모양이지요?"
"키우긴? 아무리 작아도 다 잡아먹는다. 차에 실린 걸 봐."
우리에는 이미 크고 작은 일 여덟 마리 개가 불안한지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허둥대고 있었다.
'진돌이' '메리' '해피'등 …다 이름이 있던 짐승이다.
귀엽다고 머리 쓰다듬어 키우던 짐승이다.


녀석, 다행히 오늘 하루는 잘 넘겼다.

주인의 욕심만큼 아직 자라지 않았다는 말이다. 얼마 동안 더 거둘 모양이다.

조금만 덩치가 더 커도 위험했을 것이다. 이 여름, 아니면 다음이겠지.

 
그래도 잘 살았다.
바닷가에서.
공기 좋고 물 맑은 동해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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