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태풍이 지나가고 』

일흔너머 2010. 9. 3. 09:47

 

어제부터 TV에는 온통 태풍에 대한 뉴스 밖에 없다.
서해안으로 통과하여 동해에는 그저 평소보다 파도만 약간 높았을 뿐 별다른 피해는 없다. 기상예보와는 달리 비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다. 일부러 사람들 겁주려고 하는지 하늘만 잔뜩 어두웠다.


아침에 뉴스에는 인명피해도 있다고 한다. 바람에 날아가는 기와에 머리를 맞아 노인이 숨졌단다. 농작물도 수확기를 맞아 그런지 피해가 크다. 하지만 이곳 양포 바다는 그런 피해가 없다. 그저 밤새 파도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함께 사는 아파트 관리아저씨는 긴 막대를 들고 해안의 파도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몇 시간째 떠내려오는 청각(靑角)을 줍고 있었다. 처음에는 '파도가 위험한데 뭐 저런 걸 들고 바닷가에 나가 있는가'했지만 집사람이 가보고는 우리도 건지자는 것이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니 따라나섰다. 파도에 밀려 따라나오는 청각은 생각보다 많았다. 잠시 주운 것이 한 소쿠리 정도 되었다. 바닷가 어촌에서 오래 살아온 수퍼 아주머니에게 마치 좋은 일을 해놓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자랑삼아 보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우리가 주운 청각을 보더니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라'고 했다. 처음에 우리는 말려 가을 김장에 쓰려 했다. 옛 어른들이 김장을 할 때 청각을 넣으면 잡내가 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데쳐 먹는다는 말에 저녁 반찬이 하나 생긴 셈이다. 아줌마 말처럼 뜨거운 물에 데쳐 놓으니 색깔이 파랗게 변하고 먹어보니 부드러운 촉감이 제법 먹을 만 했다. 까짓 영양이야 나중 일이다. 그저 좋은 경험 한번 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공부가 아인기라요. 이래 살며 늙수그레한 아줌마한테 배우는 것도 공부 아닙니까? 그러니 내가 선생이지요."
웃으며 이야기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삼십년 이상 오래 교직에 근무한 것을 알고 하는 소리다.
"그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한다. 자연이 바로 선생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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