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가슴 아픈 그림 』

일흔너머 2010. 9. 4. 09:13

 

 

겨우 돌 지난 아이를 두고 육아휴직을 끝낸 둘째는 출근을 했다.
평소 표정이 환하게 밝고 재롱을 잘 피워 그저 사랑스럽게 여겼는데 막상 엄마가 일하러 가고 어린것이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애민(哀愍)하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차치(且置)하고 기저귀를 차고 뒤뚱거리며 겨우 걷는 데 낮에는 엄마와 헤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애처롭다.

 

미리 아기를 봐 줄 사람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둘째가 출근해야 하는 날은 다가오고 결국 집사람이 보름 넘게 외손녀 뒤치다꺼리를 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겨우 보모를 구했다. 아이가 보모 아주머니를 좋아하고 자식을 키운 경험이 많아 마음이 놓인다며 며칠 전에야 겨우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은 온통 외손녀에게 가 있다. 아침이면 '이 녀석이 엄마와 떨어지는구나.' 또 저녁이면 '곧 퇴근하는 엄마와 만나겠구나.'하며 종종 전화로 오늘은 어땠나, 어려운 일은 없었나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는 집사람이 둘째의 전화를 받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 일인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있으니까 전화 내용을 털어놓았다. 어제 저녁에 태풍으로 둘째가 비상근무를 했단다. 아이를 보모에게 평소보다 더 오래 맡겨놓기가 어려워 가까이 사는 시댁에 맡겼단다.

 

지금 우리 친손녀도 그렇지만 외가에서 아이를 오래 돌보다 보면 친가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는 낯설다. 한창 낯가림하는 아이들은 친할아버지를 만나면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외가에서  오랜 시간을 지냈기 때문이다.

 

녀석이 친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오지 않고 혼자 벽으로 돌아앉아 있더란다.

그래서 뭐 하는지 가보니 손에 신발을 쥐고 울고 있더란다.

말도 못하는 겨우 돌 지난 어린 녀석이 말이다.
 
직접 보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는 벌써 그림이 그려졌다.

혼자 팽개쳐진 아이의 가슴 아픈 그림 말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을 돌봐줄 손길이 없다는 걸 느끼고 울먹이는 모습이 어른거리는데 기가 막힌다.

 

앞으로 살면서 이런 이별은 습관처럼 하겠지만 스스로 엄마의 손을 떨치고 떠날 때까지는 아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가.
산다는 게 뭔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황당(荒唐)과 당황(唐慌) 』  (0) 2010.09.08
『 세상 무섭다 』  (0) 2010.09.06
『 태풍이 지나가고 』  (0) 2010.09.03
『 꽃이 아름다운 건 』  (0) 2010.07.16
『 그래도, 잘 살았다 』  (0) 201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