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황당(荒唐)과 당황(唐慌) 』

일흔너머 2010. 9. 8. 10:43

 

 

병원에 가는 것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다.
한꺼번에 너덧 개의 수액주사를 달고 입원실에 누워있는 친구보다는 낫지만 아침밥을 거르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짜증스럽다. 그것도 무슨 배급 타러 온 것도 아니면서 번호표를 뽑아 쥐고 줄지어 기다린다는 것은 한편 귀찮기도 하고 한편 우습기도 하다.


특히 저녁 열시 이후는 물도 마시지 마라고 해서 소변 양이 잔뜩 줄어든 사람에게 소변검사를 위해 그것도 두 컵이나 받아오라는 것은 당황스럽다. 소변이 나올 때까지 병원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을 마실 수도 없어서 억지로 쥐어짜듯 해서 겨우 나오는 작은 양을 똑같이 두 컵에 나누어 담아두고는 도망치듯 병원을 나오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미리 플라스틱 물병을 준비하여 자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그 병에다가 소변을 받아두었다. 그리고 준비된 자의 편안한 마음으로 의기양양하게 검사를 하러 갔다. 먼저 채혈을 하고 X-선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소변만 받아두면 끝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차에 가서 받아온 소변을 담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에 기미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았다. 제법 두 컵에 나누어 줄 정도로 양이 흡족하였다. 소변을 두는 장소에 가지런히 두고 나오면서 나도 모르는 웃음이 나왔다. 황당하였다. 쓸데없이 소변까지 준비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들과 하던 황당과 당황의 차이를 놓고 하던 농담이 생각났다.
배가 아파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정작 나와야 할 것은 나오지 않고 가스만 연달아 나올 때 황당하다. 그리고 시끄럽고 번잡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배가 아파 잠시 가스를 빼려고 힘을 주었더니 바라던 가스는 안 나오고 다른 큰 실례를 했다면 정말 당황스럽다. 정말 두 말의 차이를 잘 꼬집어 비교한 상황이다.


황당이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는 것을 말한다.
당황이란 바로 놀라거나 다급하여 스스로 비이상적인 행동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 영어로 패닉(Panic)이라 한다.
살면서 황당한 일도 당하고 그래서 당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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