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누가 이런 노인을 본적이 있습니까? 』

일흔너머 2010. 11. 23. 11:10

 

 

파도가 지나간 해변에는 물결에 떠밀려 온 해초들이 널려있습니다.
아침을 먹고 그 해초 중에 청각(靑角)을 주우려 나갔습니다.


생각하면 웃깁니다.
등산복 말쑥하게 차려입고 까만 비닐 봉지 하나 들고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늙은이,
누가 이런 노인을 본적이 있습니까?
 
모두가 객지에서 온 날 용하게 알아봅니다.
바다는 파도를 더욱 세차게 쳤다가 내가 뒤로 물러나면 재밌다는 듯 다시 저만큼 달아납니다. 그리고 허리를 구부려 청각을 주우면 어느 새 다가와 발목을 잡으려고 달려듭니다. 아직 초(初)짜라는 걸 알고 하는 짓입니다.
여럿이 모여 앉은 갈매기들도 이런 날 깔보며 눈을 흘깁니다.
객지에서 온 떠돌이라고 얕잡아 보는 겁니다.

 

겨울 바다,
철지난 바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철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눈뜨면 아침이고 해 떨어지면 저녁인데 날이 조금 덥다고 철이고 춥다고 철이 지났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저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이는 것이고 구름이 끼면 비가 오는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파도를 기다리는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고 소나무는 온 종일 해변을 꿋꿋이 지키고 있습니다.


갈매기를 보십시오.
날개가 있어도 결코 바다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저 바라보며 저렇게 묵묵히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어제 그 갈매기, 오늘 또 날아오르는 겁니다.


드넓은 바다를 보고있으면 모든 갈등이 쉽게 풀릴 줄 알고 불현듯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가슴속에는 밤새 바람이 불고 파도는 더욱 높게 일었습니다.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갈매기는 키득거리며 바람을 타고 유연하게 머리 위로 날아오릅니다.

 

바람이 파도를 만듭니다.
생각이 갈등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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