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MP3 』

일흔너머 2011. 2. 14. 12:05

 

 

 

마른 오징어를 찢어 입에 넣고 씹으면 처음에는 짠 소금기만 느껴지고 입안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고 그저 뱅뱅 돌면서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침에 젖어서 부드러워지고 어느 정도 씹히면 그때부터 차츰 오징어의 구수한 맛이 우러나온다. 이때부터는 입안이 바쁘고 혀가 즐겁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처음 생소한 노래를 들으면 아무 감동이 없다. 몇 번을 듣고 가사가 귀에 들어오고 나중에는 가락에 익어 스스로 따라 부르게 되면 결국 그 노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길을 걸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습관처럼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아하지만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클래식이나 고급스런 노래가 아닌 유행가나 정선아리랑 같은 가락이거나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가사이면 좋다. 그래서 산책을 할 때 귀에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 하는 MP3를 꽂고 그렇게 걷는다.


어떤 때는 이응관 명창의 배뱅이굿을 열심히 듣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조용필의 노래를 듣기도 하며 걷는다. 세상 참 편하고 좋아졌다. 조그만 지갑보다도 더 작은 기계에 온갖 노래를 담아 그것도 잡음 하나 없어 음질이 얼마나 좋은지 기가 막힌다.


한 때 일본의 소니전자사가 워크맨이란 녹음기를 팔아 세계를 흔들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 정작 그것을 살 엄두를 못 냈다. 항상 하고픈 것을 마음에 담고만 살았지 쉽사리 손을 내밀 여유가 없었다.

 
MP3도 마찬가지였다. 퇴직을 할 때 같은 과 여선생님이 자기 아버지에게 선물을 하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내게 주었던 것이 처음이다. 그렇찮아도 퇴직기념으로 뭘 해드리나 하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고 하면서  중국산인데 얼마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그러고 보니 몰라서 그렇지 큰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며 한참을 썼다.


둘째가 그걸 보고 마음이 아팠는지 국내에서 제일 좋다는 걸로 두 개를 사서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한다며 내밀었다. 정말 좋았다. 헬스장에서 팔에 두르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달리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웠는데 그걸 나도 하게 된 것이었다. 산책을 할 때는 또 다른 하나의 즐거움이 생겼다.


며칠 전에는 중국어를 배워볼 양으로 책을 사면서 CD도 함께 들어 있는 걸로 샀다. 속으로 이걸 MP3에 녹음하여 매일 들으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회화를 녹음한다고 컴퓨터로 넣자 회화는 나오지 않고 MP3는 아무런 스위치도 작동되지 않았다. 속으로 '고장이 났구나. 또 귀찮게 서비스에 가서 고쳐야 되겠구나.'하고 책상 위에다 팽개쳐 두었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전자 상가에 가서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못 이긴 척하고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어 서비스 점을 찾았다. 그리고 차례가 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 담당자에게 맡겼더니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 하는 말이,
"여기 잠겨있네요."
그저 스위치 잠금 장치 하나 딸깍하고 풀어주는 것이 다였다. 모르면 등신 되는 것이다. 이틀을 고민하고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와 그렇게 기다렸다가 받은 조치는 그저 딸깍하며 작은 스위치 하나 내리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모르고 여태껏 썼단 말인가. 다른 많은 기능은 제쳐두고 그저 노래만 들었던 것이다. 요즘의 전자기기가 다 그렇듯 편한 만큼 복잡하다. 전화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능이 많고 편하고 좋으면 뭐 하는가. 전화통화 외에는 아무것도 이용하지 않는 것을.


마른 오징어는 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좋다. 모두 그렇게 안다. 하지만 노인은 마른 오징어의 그 진정한 맛을 잃었다. 이빨이 없으니 몇 번을 씹다가 귀찮아지면 거칠어도 넘겨버린다. 그저 짭쪼름한 첫맛과 그리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포만감 하나로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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