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복 담는 집 』

일흔너머 2011. 2. 18. 10:51

 

 

 

누구나 그렇지만 혼사는 바쁘다. 정신이 없다. 세 번이나 치렀지만 언제나 마찬가지다. 아들혼사 때 일이다. 친지들은 따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도록 음식점을 마련했다. 주차장 넓고 예식장과 가까워 좋았다. 모두들 돌아가고 음식값을 치른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전화가 왔다. 계산이 틀렸다는 것이다. 또 실수를 했구나 싶었다. 보통 이럴 경우 음식점에서 덜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아니었다. 미리 낸 예약금을 잊고 그것을 빼고 계산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튿날 찾아가서 예약금으로 낸 돈을 받아 나오면서 이런 집도 있구나 싶었다. 상호는 '복 담는 집', 그 후에 학교 동창들의 모임을 그 집에서 두어 번 했다. 마음씨가 고와서가 아니라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이 명절이었다. 식구들과 함께 오곡밥을 나누어 먹고 오순도순 얘기도 나누고 했다. 가까이 아들이 있어 지난해는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올해는 집사람이 몸이 피곤한지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저녁이라도 함께 하자며 전화를 했다. 이럴 때 만나고 싶은 건 오히려 우리다. 젊은 사람들이야 항상 바쁘다는 핑계(실제로 바쁘기도 하지만)로 사실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아들 며느리가 만나자면 언제나 '그러자'다.

 

오후에 목욕을 하고 잠시 등산구점을 들렀다가 약속장소로 갔다. 바로 그 '복 담는 집', 여주인은 구면이다. 훤출한 키에 인사성도 좋다. 종업원들이 손녀를 보고 귀여워서 난리였다. 아들 내외가 편히 먹도록 손녀를 데리고 나왔다. 그 때 결혼을 한 아들이 벌써 이런 손녀를 얻었느냐며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세월 참 빠르다는 이야기다. 그저 장사치들이 하는 좋은 말이라 여기며 웃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턱에는 화분 대신에 여러 가지 도자기를 놓고 미나리를 키웠는데 파랗고 깨끗하게 자라고 있었다. 뭔가 좋은 말을 해 줘야겠다는 마음에 어떻게 저리도 미나리를 예쁘게 잘 키웠느냐고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화사한 얼굴 어디에서 그런 경상도 투박한 사투리가 나오는지 모르지만,
"식물이나 자식이나 지가 크는 거지 어데 키운다고 되능기요?"
선사의 화두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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