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가장(家長)인데 어쩌겠습니까? 』

일흔너머 2011. 11. 28. 13:11

 

                                [ 영양 반변천에는 이런 아늑한 곳이 있습니다. 수달이 무리지어 산답니다...! ]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다들 못 산다, 못 산다 해도 예전 우리 어릴 적 같기야 하겠습니까.
그때는 힘이 있으면 뭐 합니까? 일 자리가 있어야지요. 장정들이 그저 한다는 것이 지게 지고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이 제일 손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마을 근방에 있는 나무는 다 잘라버렸지요. 산도 헐벗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금처럼 우거진 숲다운 숲이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인도를 가니 그랬습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그저 한다는 것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강가에서 망치로 돌을 깨어 자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콘크리트 재료로 쓸 자갈 말입니다. 지난 우리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 기가 막히더군요.

 

그때는 먹는 것도 그랬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음식들이었습니다. 보리 단가루로 만든 개떡같은 것은 요즘은 그저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그런 음식들이었습니다. 끼니를 이어 겨우 연명(延命-목숨을 이어 살아감)하는 처지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요. 가정을 이끄는 주부들은 끼니때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끼 한끼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그것이 최대 임무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시골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늘인국」- (더 많게 늘인다는 의미의 국수)이란 겁니다. 수제비나 국수 조금 넣고 온갖 시래기를 넣어 끓인 건데 죽에 가까운 희멀건 국물입니다. 한끼라도 더 늘여서 먹어야 하니 온갖 채소를 쓸어 넣고 심지어 거기다가 호박이 아니라 호박꽃대 즉 수술대도 넣었을 정도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우리가 본래부터 이렇게 잘 살았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끼니걱정 없이 산 것이 대체 얼마전 일입니까. 벌써 다 잊고 삽니다. 물론 지금도 하루하루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지만 그때처럼 거지가 온 천지에 깔려있지는 않습니다.

 

사십대 중반의 가장이 술에 취해 넋두리하는 걸 들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 월급날이면 아무리 없이 사는 가정이라도 어머니는 돼지고기에 소주 한잔 마련하고 식구들은 아버지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식탁과 반찬은 항상 아버지 위주였습니다. 가장이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모든 게 아이들 중심이고 아버지는 괄호 밖으로 나앉았습니다. 애들 공부시키며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치는데 참 어렵습니다. 화장실에서 물 세게 틀어놓고 아무도 모르게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울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가장(家長)인데,
사람 사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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