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동해 바닷가에 작은 쉼터 』

일흔너머 2014. 4. 30. 11:02

 

 

 

            아직 철이른 해변입니다. 모래가 거칠지만 거리는 1.8 킬로나 된답니다. 저 너머 조사리 입니다.

 

퇴직하고 하는 일 없이 놀면서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었다면 바닷가에 조그만 쉼터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경주 감포항(甘浦項)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집을 얻어 한 일 년 기거를 해보았다. 모든 세상사를 잊고 바다만 바라보며 지내는 것이 무척 좋았다. 거기다가 시원한 바닷바람에 여름 더운 줄 모르고 지나갔고 간혹 친구들이 찾아오면 가까이 머물 곳이 있는 탓에 퍼질러 앉아 마음 놓고 술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변덕스런 마음은 그것도 잠시 또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고요히 걸으며 집사람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오솔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바닷가에는 울퉁불퉁한 갯바위와 훤히 튄 모래사장이 다였기 때문이다.

 

결국 일 년을 지내고 뭔가에 쫓기듯 둘째가 있는 시골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인 경북북부지방, 흔히 BYC라는 봉화, 영양, 청송 중에 산골 영양으로 찾아간 것이다.

 

정말 좋았다.

나가면 이삼 분 안에 산과 강을 만나고 차량의 정체나 신호등마저 없는 곳이다. 거기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웃고 인사하고 심지어 학생들도 어른들만 보면 인사를 하니 도시에서 살던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어쩌다가 어긋난 학생 중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피우는 녀석도 있었지만 어른들에게 들키면 얼른 감추거나 숨어버려서 도시 녀석들의 뻔뻔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자연 스트레스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겨울이 문제였다.

얼마나 추운지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동해안이 가까운 탓에 눈도 많았다. 꼼짝없이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가끔 생각날 때 찾아가 지낼 수 있는 곳을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낸 것이 그것도 혼자 좋은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적당한 계절에 한 번씩 찾아가는 곳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거리도 비슷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곳, 마침내 찾아낸 것이 월포해수욕장의 작은 빌라였다.

 

첫째가 있는 울산과 앞으로 둘째가 살 안동 그리고 막내가 있는 대구, 그 중간 지점이 동해안의 월포(月浦)였다.

 

 

            빌라 옥상에서 본 월포 마을과 해안, 왼편에 산이 월포해수욕장의 그 조사리쪽 산이다.          

 

포(浦)자가 들어가니 갯가 포자라 눈앞에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곳이라 상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작은 갯마을 가운데 있는 집이라 무더운 여름 해가 약간 기울어 불볕더위가 다소 누그러들면 가벼운 슬리퍼를 끌며 바다까지 갈수 있는 그런 정도의 아주 멀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빌라다.

 

지친 해수욕객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거슬러 집사람과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며 바닷가를 거닐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가벼운 면(麵)으로 저녁을 때우고 멀리 바다가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뉘리라.

 

어쩌다 휴가를 오는 아이들을 반겨 맞으며 그들에게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어디 있다고 가르쳐주면 쉼터의 주인은 바뀌고 집사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거나 가까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번 봄은 혼자 앞으로 일어날 온갖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여름 준비에 바빴다. 부서진 곳은 수리하고 도배를 하면서 약간의 가구와 전자제품을 구입해서 배달되지 않는 물건들은 작은 승용차로 나르다보니 주말마다 쉴 수가 없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다.

 

이제 곧 봄이 가면 여름이다.

쉼터가 과연 바라는 만큼의 진가를 보일 것인지 기대가 된다. 부족한 것은 언제든 더 갖추고 어지간한 펜션처럼 이용하리라. 지금껏 들어간 돈이라야 똑똑한 놈 하루 저녁 술값도 안 되고 겉멋만 번지르르한 요즘 젊은 녀석들 몰고 다니는 승용차 한 대 값도 안 되는 것이니 가진 재산을 크게 낭비한 것도 아니라 여긴다.

 

설레는 가슴으로 어서 무더운 여름이 오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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