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대구에서 』

일흔너머 2019. 9. 23. 10:58




 

추석 전주의 월요일을 맞습니다.

집사람은 방금 고속버스편으로 안동 가고 저 혼자 남았습니다.

말이 대구지 제가 있는 이곳은 아직도 시골처럼 조용합니다.

제 귀에 이명(耳鳴)이 한여름 매미처럼 울어대서 그렇지 평안한 가을날입니다.

 

누나에게 메일을 쓰면서도 자꾸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소식이 없으면 그게 희소식이라는 옛말도 자신을 위로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언제 경기가 좋을 때가 있었습니까마는 올해는 유난히 어렵다고들 합니다.

거기다가 예년과 달리 추석도 일찍 왔으니 과일값도 값이거니와 특별히 굵고 큰 것은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어저께 태풍이 과거 사라호처럼 엄청난 바람을 가져와서 농경지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가 고해인 것은 늘그막에야 알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평소처럼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여서 산책길에 피부과를 들렀더니 대상포진이라고 합니다.

많이 아프다고 하는데 통증도 없고 해서 물었더니 예방주사를 맞아서 조금 약하게 왔다네요.

 

그리고 닷새 동안 항바이러스 약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불편한 것도 없고 물집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집사람이 손목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는 말이,

"이렇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아프고 불편한 것이니 수술하지 말고 약으로 치료를 해 봅시다."라고 하더랍니다.

 

말은 맞지만 의사가 병 다 고치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걸 위로하는 정도라고 여기고

어려운 사람 돌보며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행복합니다.

더 바라지도 않습니다.

잘 살아왔습니다.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 떠날 때 자식들이 보고 있다면

죽음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과정이란 걸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햇살이 무화과 잎에 화사하게 내리고 마지막 더위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저 즐겁고 재미나고 웃을 일이 많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건강 하십시오.

 

2019. 09. 10. 동생.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덕션 」  (0) 2020.11.25
『 전재산 』  (0) 2019.10.28
『 구루마 동테 』  (0) 2019.08.26
『 뭐 하는 물건인고? 』  (0) 2018.07.09
『 간송 조선회화 명품전 』  (0) 201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