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급한 친구 』

일흔너머 2012. 3. 10. 19:48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 중에 서로 반대의 성격이 만나면 다툼이 일어나고 친구로 사귈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의 성격이라도 꼭 친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삶이다.

 

성격이 급한 친구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그 친구와 함께 여행도 다니고 부부가 함께 만나 영화도 보고 그런다. 다른 친구들 모두가 하는 말이 신기하단다. 처음에 강원도 여행을 갈 때는 모두가 걱정을 했다. 동기생 중에 제일 급한 친구와 제일 느린 친구가 과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를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2박 3일의 여행을 아무 탈 없이 잘 마치고 재미나게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껏 몇 년이 지났지만 여름만 되면 함께 여행을 한다.

 

재미난 것은 그 친구의 행동이 얼마나 빠른지 목적지에 도착하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장권을 사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는 우리가 입구에서 안내판을 읽을 때 벌써 혼자 돌아보고 나와서 우리가 올 때를 대비하여 시원하라고 자동차의 에어컨을 켜두고 기다리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너그럽게 깔려있으니 다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우스개소리 같지만 그는 항상 저 앞에 가고 나는 뒤따라가니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다툴 여유조차 없는 것이다.

 

어제는 그 친구가 경영하는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묻고 밥을 먹으려니까 조용히 귓속말로 물었다. ‘요즘도 바퀴벌레가 나오느냐?’ 아, 그러고 보니 일전에 바퀴벌레 잡는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난다. 식당에 바퀴벌레가 나와서 어떤 손님이 가르쳐 주었는데 감자를 삶아 붕산을 넣고 섞어 어두운 곳에 두면 바퀴벌레가 나와서 먹고는 다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 봐야겠다고 했더니 그걸 묻는 것이었다. 집사람이 아직 못했다고 하니 ‘감자를 몇 개 주랴’며 묻는 것이다. 자기도 시장에서 감자를 사는 처지에 뭘 주고 얻고 하는가 싶어서 그만 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말없이 밥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그 친구가 검은 비닐봉지에 싼 것을 내밀었다. 집사람이 받아서 보고 놀란다. 감자 몇 알과 붕산 한 봉지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 다 산 것 아닌가요?’

하며 물으니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는다.

음식 맛도 맛이려니와 이렇게 항상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주려고 하니 식당은 손님으로 항상 미어터지는 것 아닌가.

 

집사람은 친구의 성질이 급하고 행동이 재바르면서도 그저 남에게 베풀려는 그 마음씨를 곱게 본 모양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친구 얘기가 끝없이 나온다.

그래서,

‘며칠 있다가 저 친구가 바퀴벌레 약을 했느냐고 묻거든 일이 바빠 아직 못 했다고 하면 집에 찾아와서 감자를 삶고 붕산을 섞어 조제를 한 다음 우리 집 구석구석 약을 놓아줄 거니까 기다려봐.’

하니 집사람은 내 말에 배를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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