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잔인한 봄 』

일흔너머 2012. 5. 2. 07:43

 

 

 

아무리 변덕스런 날씨라도 봄은 기어이 왔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올해는 유별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는 벌써 잊어버려서 그렇지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추웠다가 따뜻했다가 그러다가 봄이 오고 또 따뜻했다가 추웠다가 그러다가 겨울이 오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이 괜히 유난을 떨어서 그렇지 환절기란 다 마찬가집니다.


요즘은 손녀를 본다고 시골 딸네 집에 있으니 손녀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따뜻한 햇빛을 안고 산으로 들로 산보를 다닙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벌, 나비를 부릅니다. 공해가 없는 산골에는 쑥, 고사리, 취나물이 지천입니다.

 
어제는 도시락을 준비하여 조그만 배낭을 메고 그 유명한 일월산 자락을 헤맸습니다. 장송이 우거진 「외씨버선길」에는 아무 일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와도 좋은 곳입니다. 지난 해 고사리가 우거졌던 곳을 일부러 찾아가 둘러봅니다. 올 고사리가 제법 실하게 살이 올라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곁에는 마침 두릅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지만 어느 누가 벌써 모질게 꺾어간 뒤였습니다. 실망했습니다.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아무도 손대지 않아 탐스럽게 올라오는 두릅 순이 있었다면 나 또한 어떻게 했을까하고 말입니다. 모르긴 해도 마찬가지로 싹둑 꺾었을 겁니다.


그런데 싹을 잃은 두릅나무를 생각하면 불쌍합니다.

흔히 시골사람들이 개두릅이라 부르는 엄나무도 마찬가집니다. 겨울 추위를 억지로 버티고 이제 겨우 봄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면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댕강 목을 잘라버리는 겁니다. 나무는 어떻게 될지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입만 생각해서 그렇지 당하는 나무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힙니다. 올 한해 희망을 품고 올라오다가 그만 한순간에 무너지는 겁니다. 어떤 경우는 아예 나무가 통째 말라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해 봅니다.

아마 나무들은 해마다 이렇게 당하느니 차라리 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아팠으면 온몸을 후벼파고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다가 가시를 둘렀겠습니까? 아픔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이 싹을 따는 것을 피해보려고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 보호하려는 애처로운 나무의 발버둥 말입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이런 건 제철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하면서 오늘 저녁 반찬으로 새파란 두릅 순을 알맞게 데쳐 초장과 함께 밥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든 내 손은 나도 모르게 그 파란 두릅 쪽으로 향하고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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