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잔차를 타고 』

일흔너머 2013. 5. 2. 11:36

 

 

길을 나서면 제일 큰 적(敵)은 바람이다.

오르막 경사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렵게 땀 흘려 올라가면 쉬 내려올 그만한 내리막길이 기다린다. 물론 내려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어차피 나선 길인데 팔자려니 하고 그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면서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힘들어도 즐기면 된다.

 

하지만 바람은 다르다.

편안하게 등을 슬금슬금 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헐떡이며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심술을 부리는 것이 바람이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돌아올 때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느새 방향이 바뀌어 돌아올 때마저 바람을 안고 오는 불운한 날도 있다. 물론 뜻하지 않은 행운이 등을 밀어 온 종일 쉽고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 바람이다.

 

노란 선으로 왕복 차선을 갈라놓은 잔차길에서 바람을 안고 낑낑대며 힘들어 할 때 반대편으로 바람을 등지고 씽씽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아까 나도 저 길을 저렇게 달렸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금방 있었던 일을 벌써 까맣게 잊고 바람을 안고 시달리며 힘겨운 지금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면 안 된다. 시원하게 달리는 그 사람도 매양 그렇게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갔다가 결국은 또 이렇게 돌아와야 한다.

 

생각하면 갔던 길 돌아오는 것이 뭐 어렵겠나?

나이 들어 체력이 좀 달려서 그렇지 기술이야 아직 눈 감고도 간다. 그래, 젊을 때처럼 성급하게 설치지만 않으면 실수도 없다. 느긋하게 천천히 페달을 밟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인터넷에 쓴 댓글을 읽어보면 ‘늙은이들은 그저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왜 나돌아 다니고 정치에 끼어들고 난리들이냐.’라며 그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어느 정도 상식이 있을 것 같던 정치인도 그랬다. 노인들은 그저 가만있어도 된다고. 가만있을 거라면 차라리 산에 가서 누웠지 왜 집에 있을까.

 

젊음만 인생이 아니라 늙음도 삶의 한 과정이란 것을 몰라 그런 것이리라. 항상 젊음이 주인공이 되라는 법은 없다. 젊다고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할 권리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 사는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걸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식사를 마치고 주섬주섬 약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는 친구에게 물었다.

“하루에 약은 얼마나 먹나?”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안 아픈 인생도 있나?”

 

그래, 삶은 아프다.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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